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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저자: 최갑수 l 출판사: 상상공방 l 판형: 132x190 l 발행일: 2008.07.10 l ISBN: 978-89-8300-607-3 l 페이지: 320  

 

정가: 12,000원

 

여행지에서 띄우는, 여기 아닌 다른 생을 꿈꾸는 인간에 대한 찬사
―10개국 23개 지역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

시인이자 여행 작가 최갑수가 그의 두 번째 여행 에세이집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를 펴냈다. 2000년에 낸 시집 『단 한 번의 사랑』(문학동네) 서문에서 '나는 부랑자이거나 방랑자이어야 했다'라고 고백한 최갑수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정말로 세상 곳곳을 떠도는 여행자가 됐다. 지난해 펴낸 첫 번째 여행 에세이집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예담)이 주로 국내 여행의 기록이라면, 이번 책은 여행 작가로서의 돌이킬 수 없는 삶을 자처한 그가 날아가 닿은 낯선 이방의 기록이 주를 이룬다.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터키,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 말레이시아, 라오스 등 10개국 23개 지역의 풍경과 사람 이야기가 한 편의 시 같은 사진과 글로 엮어졌다. 물론 그의 유전자가 언제나 그를 데려다 놓고야 마는 한국의 외로운 섬과 그 길에서 만난 꽃의 풍경도 곁들여졌다.
지구 곳곳을 흩날리듯 부유하는 이 여행자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살아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재 가치가 있음을 자신의 사진과 글로 증언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생존을 위해 낮은 포복으로, 팔꿈치로 기는 삶일지언정 여기 아닌 다른 생을 꿈꾸고야 마는 모든 산 것들에 대한 찬사이다.

물기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 떠도는 모든 산 것들의 생명력

최갑수 노정의 반경은 넓어졌지만, 그가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내는 풍경의 채도와 그 풍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인간의 포즈는 일관된다. 하나같이 부스러질 것 같지만 미소를 품게 하고, 고독하지만 이 생을 살아내겠다는 결의에 차 있으며, 곧 휘발돼버릴 것 같기에 남루조차도 아름답다. 여행자로 살아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그의 카메라 렌즈는 살아 있는 것들의 이런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이런 이 책을 두고 요리사이자 『와인 스캔들』의 저자 박찬일은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내왔다.
"그가 약관에 문단을 들쑤셔 놓았던 절창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의 사진은 놀랄 일도 못 된다. 사진이 테크닉의 소산이 아니라는 걸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솜씨도 없지 싶다. 그는 대상을 명징하게 집어 보여주지는 않는다. 흐벅진 그의 시구처럼 천천히 대상을 용해시켜 풀어낸다. (…) 이 책은 그 촉촉한 눈으로 본 세상이다. 사진과 글에도 습도가 있다면 아마 이걸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최갑수의 그 촉촉한 눈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뿌리 깊은 비극성까지 섬세하게 훑어 내려가다가, 마침내 그 비극성이 꽃피우는 '동경'이라는 생존의 힘을 만난다. 때문에 최갑수의 카메라가 길어낸 피사체는 마치 멜랑콜리라는 필터를 끼워 찍은 듯 불안하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처럼 보이지만, 각박한 생존사회의 한중심에서는 잊고 지나쳐버리는 사람의 아름다움과 생의 의지를 꽉 붙들어 은밀히 내보이고 있다.

여행지의 풍경을 넘어 일상의 비경을 환기시키는
우리 생에 바치는 위로

언제부턴가 여행지의 기록을 담은 책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그 책들의 빛과 결들이 너무도 다양하고 화려하여 그 행렬 속에서 여행지에서처럼 그만 길을 잃을 것도 같다. 그 속에서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는 제목 그대로 천천한 구름 그림자 아래를 걷는 여행법과 그보다 더 천천한 사유의 목소리를 담고 있기에 색다르게 빛난다. 책의 편집도 저자의 여행법처럼 천천하고 여유롭다.
첫 번째 장 <두려움과 떨림>은 익숙한 거주지로부터 여행이라는 탈출을 감행하기까지, 또한 낯선 곳에 자신을 툭 부려놓기까지의 심리적 풍경을 담아낸 장이다. 두 번째 장 <고독의 발견>은 여행의 노정에서 더욱 민감하게 발현되는 고독이라는 정서가 인화하는 풍경과 서정을 담았다. 세 번째 장 <길 위의 삶>은 저자가 여행지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현지인들과 다른 여행자들의 사연을 들려주며, 네 번째 장 <비현실적인 현실>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혹은 여행의 일상적 공간에서 맞닥뜨리는 비현실적인 현실을 포착하고 있다. 다섯 번째 장 <이토록 사소한 위로>는 삶 혹은 삶의 다른 이름인 여행에서 우리를 위안해 주는,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한 줌 소금 같은 대상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이제 과거처럼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환경은 아니다. 정작 결여되어 있는 것은 문득 여행을 감행할 수 있는 내 안에서의 트리거, 혹은 평생을 꿈꿔 온 여행의 방식을 관철해내는 여행자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는 매순간 생의 끝자락을 붙잡듯 불안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깨를 툭 치며 단 며칠이라도 우리를 옭아맨 모든 것들로부터 탈출할 용기를 주는 책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좋다. 지금 당장엔 일상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날지언정 잠들기 전 하루 몇 쪽씩 그의 글과 사진을 읽어내려 가노라면 지금 이곳에서도 이국의 먼 풍경과 종소리를 떠올릴 수 있으며, 숨 가쁜 계획에 치인 여행자보다 더 많은 것을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아가 어쩌면 매일같이 오가는 골목 어느 구석에, 우리가 놓친 생의 비경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부박한 거주지에 붙들려 살더라도 절망과 권태, 통속까지 웅크리지 않고 받아들여야 문득 비상하여 저 너머를 향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 저자 최갑수가 진정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그것인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나는 메모했다. 기차 안에서, 바람 아래에서, 모텔 베란다에서, 늦은 밤의 어두운 카페에서, 눈 내린 자작나무 숲에서, 수도원의 종소리 아래에서 나는 나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생활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날짜 변경선을 지나며 우리 인생의 덧없는 하루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사막에서는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경을 정신의 흔적이라고 한다면 이 책에 실린 짧은 교감의 기록도 풍경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는 낯선 풍경이 당신에게 새의 발자국 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중에서
본문 발췌

모퉁이를 돌면 내가 간절히 사랑했던, 잊고 있었던, 찾고 싶었던, 만지고 싶었던 당신과 부딪힐 것만 같다. 모퉁이. 당신과 나의 삶이 기적처럼 겹치는 곳. ―「모퉁이에서는 멈추고 싶어진다」 54쪽

케코바의 별들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쩌면 이곳에 오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생은 저 별빛처럼 애타게 바라보는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 수십만, 혹은 수억 광년의 거리를 훌쩍 날아가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외롭지 않기 위해서죠. 죽은 자들이 가득한 이 조그만 도시에서 밤하늘을 봅니다. 맥주를 마십니다. 케코바에서 적은 문장은 이것입니다. 모든 별들이 내게로 향하고 있음.
―「모든 별들이 내게로 향했던 시간_터키 케코바에서 보낸 며칠」 90쪽

그가 말했다. 숲을 보고 있으면 말이야.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평생을 바쳐도 저 빽빽한 숲의 나무 한 그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거야. ―「밴프의 전나무 숲」 127쪽

혼자서 오랫동안 여행을 한다는 게 두렵지 않냐구요? 전혀. 혼자서 뉴욕에서 살아간다는 게 더 끔찍한 일이죠. 뉴욕에서 온 캐런. ―「여행 중인 그들」 134쪽

여행자들이 다 내리고 나는 배 주인에게 물었다. 당신 아내가 힘들어 보여. 당신은 왜 배를 수리하지 않는 거지? 그가 대답했다. 배를 수리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 돈도 돈이지만 배를 수리하면 아내가 할 일이 없어져. 나도 아내가 힘들어하는 게 싫어서 아내에게 배를 수리하겠다고 말했지. 하지만 아내가 거절했어. 그녀는 나와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고 있어. 멀리서 그의 아내가 미소를 보내오고 있었다. ―「므앙노이 가는 길」 163쪽

그렇게 서로가 말없이 얼마나 있었을까. 갑자기 왕이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며 침대 밑을 가리켰다. 나는 꼬깃꼬깃한 지폐 뭉치나 가족사진인 줄 알았다. 왕이 내게 보여준 건 주황색 비닐봉지로 싼, 신문지 크기만 한 사파 지도. 이게 내 보물 1호야. 사파에서 이 지도를 가지고 있는 가이드는 나뿐이야. 초이,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손가락으로 가리켜. 내가 어디든 데려다줄게. 기억난다. 내가 어디든 데려다줄게, 라고 말하던 왕. 정말로 어디든 데려다줄까 봐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 ―「가이드 왕」 170~171쪽

컨버스화를 신고 길 위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배은망덕한 이 현실에서 얼마만큼 벗어난다. 약간은 센티멘털해지고 약간은 로맨틱해지고 그리고 약간은 이기적이 된다. ―「컨버스화」 209쪽

호텔, 우리가 다만 '지나가는', 내일까지 머물러도 되는, 서너 평의 우주. 런던의 어느 허름한 호텔에서 한국어로 씌어진 낙서를 본 적이 있다. 얼룩진 벽에는 '이곳에서는 누구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옛 애인에게 전송하려다 말았다. ―「호텔, 우리가 다만 지나가는」 222쪽

새벽 5시부터 기다리며 벌룬이 카파도키아 위를 날아오르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벌룬이 부풀어 오르고 허공에 뜬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 하늘에서 보는 카파도키아, 마치 화성의 어느 골짜기를 비행선을 타고 날아다니는 기분이랄까? (…) 데린쿠유의 지하 도시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온 순간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이런 비현실적인 현실도 실재한다. 여행은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작업이다.
―「비현실적인 현실」 241~243쪽

믿지 않겠지만 우리가 선택한 속도는 놀랍게도 시속 3km였다. 우리는 구름 그림자를 따라 달렸다. 우리는 언제나 그늘 속에 있었다. 자동차에게는 다소 모욕적이고 비현실적인 속도였지만 그날 우리의 여행은 정말이지 환상이었다.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258쪽
우리 생이 고달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는 내일이 되어도 우리 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지 않지만, 믿으려 한다. 슬픈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의 등을 밀고 있는 것은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어야 했던 그의 엉겨 붙은 머리카락 또는 소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빵 조각 같은 약간의 간절함인지도 모른다.
―「약간의 간절함」 278쪽

중국 상하이 난징루에서 활을 켜는 그를 만났다. (…) 그는 돌아서는 나를 부르더니 내 손에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운세라고 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나간다. 나쁜 일은 다 지나간다'. ―「지나간다」 281쪽

다행이다. 내가 보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있다는 건 분명 다.행.이.다. 흘러간 발자국들은 분명 어딘가에서 눈물처럼, 꽃잎처럼 고여 있을 것이다. 지금쯤 이곳이 아닌 어딘가는 봄에 휩싸여 있을 것이고 내가 가보지 못한 도시들 어느 귀퉁이에는 꽃들이 환하게 피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끝없이 봄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봄 속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서 있다는 사실. 그건 분명 눈물 나도록 다행이다. ―「분명 다행」 298~300쪽


추천사

박찬일 (요리사 · 음식 칼럼니스트 · 『와인 스캔들』 저자)
이 친구, 습기가 있다. 일본 모리오카의 한 이자카야에서 처음 최갑수를 만났다. 말도 통하지 않는 술집 주인은 마음대중으로 알아서 기막힌 술안주를 냈지만, 정작 술을 당기게 한 건 그의 참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저 나어린 시인에게 기대 마음껏 술잔을 비웠다. 그가 약관에 문단을 들쑤셔 놓았던 절창을 기억하는 이라면, 그의 사진은 놀랄 일도 못된다. 사진이 테크닉의 소산이 아니라는 걸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솜씨도 없지 싶다. 그는 대상을 명징하게 집어 보여주지는 않는다. 흐벅진 그의 시구처럼 천천히 대상을 용해시켜 풀어낸다. 그의 카메라 렌즈는 저속으로 움직인다. 세상의 빛과 시간까지 잡아내 작은 프레임 안에 가득 채운다. 고백컨대, 나는 그의 눈을 슬슬 훔쳐보는 버릇을 가졌다. 뭔가 왈칵 쏟아낼 것 같은 그 눈은 아날로그 시절 이후로 본 기억이 없는 명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촉촉한 눈으로 본 세상이다. 사진과 글에도 습도가 있다면 아마 이걸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이겸 (사진가)
무언가 더 넣어야 한다면, 무엇을 더 덜어내야 한다면 '풋 사진'이 된다. 그런 음악이 된다. 나는 풋내가 좋다. 견고한 삶과 겨루고 있는 우리에겐 풋내 맡아볼 기회가 필요하다. 완성을 향해 가지 않고 성숙한 삶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여정. 이이의 길을 찾는 방편으로 사용된 여행이 끝날 무렵, 짧은 머무름과 그보다 조금 긴 여운은 시가 될 것이다. 담아 온 풍경들이 스스로 살아내길, 이이가 두고 온 미소가 누군가를 풍요롭게 하고 있기를. 이 책이 당신의 씨앗에 설렘과 용기를 선사할 것이다. 시가 될 풍경을 만나는 기회를 선물 받아 고맙다.

윈디시티 김반장 (가수)
책을 열면 여유가 보인다. 충분한 여백 속에서 은은한 사진 한 장씩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의 의미를 깊게 깨우치지 않아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릴렉스한 에세이. 카페에 앉아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라는 말은 이 책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제 커피는 너무 비싸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품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길거리에 앉아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와 함께 읽어도 스스로가 전혀 궁상맞게 느껴지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행지에서 느낀 작가의 감성이 그대로 전해지며 언제인지 모르게 금세 읽혀지는 사진과 글들이, 아롱아롱 소나무에 달린 솔방울처럼 맺혀 있다. bless.



< 저자 소개 >

최갑수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1997년 계간《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단 한 번의 사랑》(문학동네)을 펴냈다. 일간지와 여행전문지 여행 담당 기자로 오랫동안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자유로운 여행가로 생활하며 각종 매체에 여행에 관한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행사진 에세이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예담)을 펴냈다. 어느 날 훌쩍 여행길에 오르곤 하는 그는 지금 어느 낯선 거리에서 카메라를 메고 우두커니 서 있을지도 모른다.
작가 블로그 http://blog.naver.com/ssoo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