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행본
  • 인문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저자: 이진민 l 출판사: 동양북스 l 판형: 118x188 l 발행일: 2024.09.10 l ISBN: 979-11-7210-061-2 l 페이지: 248  

 

정가: 17,500원

 





“그 어떤 백과사전보다 흥미롭고,
그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 나를 배우게 한 책.”
(안희연 시인)

“문학과 미술 그리고 철학을 넘나드는 해박함…
경이로운 책이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작은 단어 안에 든 큰 세계를 탐험하는
철학자의 단어 산책
『아이라는 숲』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등의 책을 통해 자녀교육, 예술, 인문 분야를 넘나들며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전해온 이진민 작가가 돌아왔다. 신간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독일이라는 낯선 땅에서 살게 된 저자가 선별한 독일어 단어와 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르바이트(Arbeit)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부터 ‘잔인하고 무자비한, 차갑기 그지없는 거대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 밀려드는 고통과 슬픔’을 뜻하는 벨트슈메르츠(Weltschmerz) 같은 생소한 단어까지 소개된 단어의 면면이 다채롭다. 이 책은 독자에게 새로운 단어와 만나는 지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단어를 통해 독일 사회의 가치와 지향을 읽어내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가치와 지향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저자 소개 

이진민
어렸을 때부터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책 탐 많은 아이였다.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고 싶어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맥주를 콸콸 마시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지만, 가끔은 이 산이 아닌가 보다 하는 나폴레옹의 마음을 느꼈다. 그러다 세부 전공으로 정치철학을 만났고 이거다 싶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멜론 장학금을 받으며, 그리하여 또 맥주를 쭉쭉 마시며 정치철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맥주가 샘솟는 나라 독일의 뮌헨 근교 시골에 살면서 세상이 좀 더 다정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배운 건 남을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의를 한다. 세상에 해가 되지 않는 글과 생각을 내놓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커다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큰 해가 되지 않는 편안한 엄마가 되는 것 역시 인생의 중요한 목표. 철학을 일상의 말랑말랑한 언어로 바꾸는 데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아이라는 숲』 『동굴 밖으로 나온 필로와 소피』가 있다.




 출판사 리뷰 

* 안희연 시인,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추천!
* 철학자의 사유와 경계인의 시선으로 완성한 책


철학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이진민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독일어 단어를 유리구슬 삼아 독일과 한국 사회를 비춰보는 글을 쓰려고 했다”고 적었다. 독일어 단어를 소재로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인문교양서가 완성된 건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정체성 덕분이다. 새롭게 터를 잡은 독일에서 다시 아이가 되어 말을 하나하나 배워가는 그였기에 투명한 눈과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독일어 단어들을 골라 모을 수 있었다. 한편,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자 본질을 탐색하는 학문인 철학을 오래 공부해 온 철학자답게 여러 각도에서 단어를 입체적으로 살피며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만든 나라다. 독일어로 유치원은 ‘킨더가르텐(Kindergarten)’, 아이들을(Kinder) 위한 정원(Garten)을 의미한다. 교복이나 다름없는 방수 재질의 놀이 바지 마치호제를 입고 사시사철 유치원의 큰 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며, 저자는 한국의 유치원이 학습이 주가 되는 곳이라면, 독일의 유치원은 ‘아이로서의 삶을 사는 곳’이라 말한다.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교육기관인 유치원이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는, 사회가 아이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 유치원에는 라우스부르프(Rauswurf)라는 재미있는 풍습이 있다. 라우스부르프는 퇴출이나 제명의 의미로 쓰이지만, 선생님이 유치원을 졸업하는 아이들을 유치원 밖으로 던져주는 세리머니를 지칭하기도 한다. 물론 바닥에는 두터운 매트리스를 겹겹이 깔아둔다. 독일 유치원 졸업식의 하이라이트인 라우스부르프에서 저자는 하이데거의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과 기투성(企投性, Entwurf)을 연결한다.

 “우리는 내던져지는 존재지만, 타인을 어딘가로 던져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중요하게는 나 자신도 어디론가 던질 수 있다.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피투성과 더불어 등장하는 ‘기투성’이다. 특정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던지고 데굴데굴 굴러감으로써 새롭게 변화된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갈밭에서 구르는 타인을 그보다는 조금 나은 모래밭으로 던져줄 수도 있다. 피투성은 필연이고 수동이지만, 기투성은 가능성이고 능동이다.” (132~133쪽)


일상의 단어를 들여다보면
그 사회의 지향이 보인다
철학자의 사유가 독일어 단어에서 출발한 글을 삶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면, 독일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경계인’의 시선은 이 글을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로 한 번 더 확장시킨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였다. 익숙한 것은 새로워지고 새로운 것은 놀라워졌다”는 안희연 시인의 극찬과, “독일어에 담긴 독일인들의 삶의 철학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도 돌이켜 보게 한다”는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추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책의 문을 연 첫 단어는 독일 사람들이 평일 일과를 마칠 때 외치는 ‘파이어아벤트(Feierabend)’다. 축제나 파티를 뜻하는 파이어(Feier)와 저녁을 뜻하는 아벤트(Abend)가 합쳐진 말이다. 저자는 비슷한 한국어로 ‘퇴근’을 꼽으면서도 두 단어의 표정은 “전자파 충만한 얼굴로 ‘물러나는(退)’ 얼굴과 작은 축제를 선포하며 일어나는 얼굴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다르다고 밝힌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도 훨씬 전에 한 정치인이 내걸었던 슬로건 “저녁이 있는 삶”이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현실이라는 점에서 ‘축제가 있는 매일 저녁’이 일상의 언어로 뿌리 내린 독일 사회와의 차이를 실감케 한다. 코로나로 모두가 지쳐가던 어느 날, 저자의 반려인이 다니는 연구소 대표가 직원들에게 보냈다는 이메일은 같은 시기 모범 방역국으로 이름을 떨쳤던 우리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보지 않으려 했는지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한두 달 내로 다시 봉쇄령이 내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당장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지 말고, 그 기간을 가장 건강하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기 바랍니다. 휴가를 쓰고 싶으면 쓰세요. 아직은 하이킹을 하거나 산책을 할 수 있을 때, 자연에서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겁니다. 또 다른 힘든 시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을 수 있으니, 마음을 돌보고 건강에 신경 써서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부디 새로운 연구를 시작해서 자신을 다그치려는 생각을 버리기 바랍니다.” (22~23쪽)

“어떤 단어가 존재하는가를 통해 그 사회를 알 수 있고, 여러 단어가 있다면 어느 상황에 어떤 단어를 선택해서 쓰는가를 통해서도 그 사회를 볼 수 있다”는 책 속 문장처럼 우리는 단어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읽어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일상의 단어들을 한 번쯤 의식적으로 들여다보고, 작은 단어에서부터 자신의 철학과 이야기를 세워가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각별히 추천한다.




 추천사 

이 책에는 우리가 책을 읽으며 얻고자 기대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생소한 독일어 단어의 기원과 용례, 역사성을 살피는 과정에서 몰랐던 정보를 습득할 수도 있고, 경쾌하게 세상을 읽어내는 작가의 통찰력과 지혜로 말미암아 비좁은 나의 시야가 덩달아 확장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만만찮은 작업을 완수하는 작가의 문장이 엄청난 흡입력과 재미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작가는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자기 앞에 놓이는 단어에 빛을 주면서”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는 이야기를 쓴다. 책을 읽기 전에는 평면에 불과했던 단어들이 입체가 되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황홀한 폭죽놀이를 본 듯 마음이 크고 넓고 다채로워졌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말을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였다. 익숙한 것은 새로워지고 새로운 것은 놀라워졌다. 그 어떤 백과사전보다 흥미롭고, 그 어떤 인문학 서적보다 나를 배우게 한 책이 여기 있다.
안희연 시인, 『당근밭 걷기』 저자


헤르더와 훔볼트,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는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어떤 민족의 독특한 이해가 깃들어 있다고 보았다. 이진민 작가의 신작은 일상적인 독일어에 깃들어 있는 인간과 인생 그리고 세계에 대한 독일인들의 태도와 생각, 애환을 드러내고 있다. 철학자의 예리하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 시인의 따뜻한 감성, 문학과 미술 그리고 철학을 넘나드는 해박함, 유려하면서도 격조 높은 문체가 어우러진 경이로운 책이다. 독일어에 담긴 독일인들의 삶의 철학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도 돌이켜 보게 한다.
박찬국 서울대 철학과 교수,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저자




 책 속에서 

언어‘들’ 사이에서만 거둘 수 있는 것이 있다. 경계에서 사는 삶은 고단하지만, 경계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낯선 언어가 익숙한 세계를 휘젓는 철학적 순간을 만나는 것은 고단한 경계인이 얻는 축복이다. 그 축복을 나누고 싶었다. (10쪽)

다른 사회와의 비교를 통해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어느 쪽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으며, 무엇 앞에서 뒤돌아 앉아 있는지. 어린 시절, 어른들은 ‘큰일’ 하는 사람이 되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나는 세상엔 큰일과 작은 일이 있구나 생각하며 자랐고 큰일을 우선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일보다 월을, 월보다 연도를 당연하게 앞에 두듯이. 그런데 살다 보니 세상 사람들이 큰일이라고 하는 것이 반드시 큰일은 아닌 것 같았다. 더 중요하게는, 큰일과 중요한 일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의심도 들었다. (58쪽)

온 국민이 다 아는 독일어 단어가 있다. 아르바이트(Arbeit). 줄여서 알바라고도 한다. 독일에서는 ‘노동, 일, 작업, 과제’ 등의 뜻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근무를 뜻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독일어 단어를 가져다 본래의 일이 아니라 임시로 하는 부업, 시간제 근무나 단기로 돈을 버는 일 등에 붙였고, 우리도 이를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다. (64쪽)

‘이네레 슈바이네훈트(innere Schweinehund)’는 우리말로 ‘내 안의 돼지개’, 영어로 옮기자면 inner pig dog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리는 ‘개돼지’라고 하는데 독일은 소시지가 유명한 돼지의 나라라 그런지 돼지가 앞에 온다. ‘돼지개’다. 우리의 개돼지는 슬프게도 일부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바라보며 떠올리는 단어로서 보통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이지만, 독일의 돼지개는 ‘내면의 약한 자아’를 뜻하는 말로 평소에 친근하게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다. 즉, 우리의 개돼지가 비하하는 말이라면 독일의 돼지개는 자기 합리화에 관련된 일상적 표현이다. (144쪽)

멜덴(melden)은 발표에 관한 규칙이다. 하지만 멜덴을 잘한다는 것은 발표를 똑 부러지게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 교실에서 발표를 잘한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감 있고 똘똘하게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말이지만, 독일 교실에서 멜덴을 잘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남을 배려하고 규칙을 잘 지킨다는 말이다. 답을 안다고 해서 내가 불쑥 말해버리거나 다른 친구의 말에 끼어들지 않고, 손을 들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릴 줄 아는 것. 선생님은 손을 든 아이들이 골고루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공평하게 기회를 준다. (160~161쪽)

독일에는 ‘발하이마트(Wahlheimat)’라는 단어가 있다. ‘내가 선택한 고향’이란 뜻이다. (…) 사실 고향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은 안정적인 나의 고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고향은 본래 그 안에 살고 있는 자들을 위한 단어가 아니다. 낯선 곳에서 분투하는 자들, 스며들지 못하는 자들이 더 진하게 맛보는 단어다. 한마디로, 고향을 느끼는 자들은 그곳을 떠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발하이마트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어느 정도의 아픔과 그리움을 담는다. (199~200쪽)

나는 불평불만 1급 자격증 소지자인 독일인들이 날씨에만큼은 꽤 관대한 것이 마음에 든다. 불평할 수 있는 부분, 고칠 수 있는 부분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자연의 힘 앞에서는 미소를 띠는 것. “당연하지(Naturlich)!”라는 말은 자연(Natur)에서 왔다.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이 거지 같은 날씨도 당연한 것이다. (211쪽)

지허하이트(Sicherheit)라는 단어 주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독일 사람들은 자기들이 쓰는 언어와 굉장히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여러 나라의 언어들을 건드려보았는데 독일어는 굉장히 규칙적인 언어다(그 규칙이 좀 많아서 그렇지). 발음도 정직하고 예외가 별로 없는 편이다. 영혼을 담는 그릇인 언어가 규칙적이라서일까. 독일 사람들 역시 예외를 두는 일에 엄격하고 규칙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보면 언어가 우리에게 미치는 힘이란 얼마나 크고도 재미있는지. (232~2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