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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아
레아

저자: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두행숙 옮김 l 출판사: 상상공방 l 판형: 130 x 190 (반양장) l 발행일: 2008.11.12 l ISBN: 978-89-8300-624-0 l 페이지: 360  

 

정가: 11,000원

 

* 초판 이후 발행본은 반양장본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전 세계 2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최신작

『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인간 실존의 유한성과 자기 도덕률이 빚어내는 이율배반의 비극을 섬세한 언어로 그려낸 스위스의 철학자이자 소설가 파스칼 메르시어가, 최근작 『레아』로 한국의 독자들과 다시 만난다.
이 작품은 바이올린이 삶의 전부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소녀 레아와, 그런 딸에게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수를 바치기 위해 인생 모두를 건 도박 한 판을 벌인 아버지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이야기다.
파스칼 메르시어는 전작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확대경을 들이대 그들이 자기 삶을 진행시키는 심리적 배후를 추적한다. 레아와 그의 아버지 마틴 반 블리에트를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강요하는 의무, 그로 인해 파생되는 불안과 타인에 대한 독재, 끝끝내 자신이 만들어낸 위험한 심연 속으로 침몰하고야 마는 비극을 엄선된 언어로 묘파한다.

사람이, 세상이……영원히 낯설다고 느끼는
외롭고 열정적인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 이후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버린 소녀 레아. 그런 레아가 기차역에서 우연히 길거리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듣고 바이올린에 매혹된다. 아버지 마틴 반 블리에트는 딸의 이런 변화에 기뻐하며 다음 날 당장 바이올린을 사주고 레슨 교사를 찾는다. 한때 뛰어난 실력과 미모로 베른음악원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 마리 파스퇴르가 레아의 교사가 되고, 레아는 바이올린을 잡은 그 순간부터 바로 뛰어난 재능과 열정을 발휘한다. 그러나 첫 콘서트에서 자그마한 실수를 한 레아는 그때부터 무대공포증에 시달리는 한편, 교사 마리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과 성공에 대한 과도한 열망으로 내면에서 병들어간다.
한편 젊은 시절 뛰어난 지력으로 베른대학의 최연소 교수가 됐으며 신학문 바이오사이버네틱스 분야의 떠오르는 별로 인정받는 학자 마틴 반 블리에트는, 딸이 바이올린을 시작한 후부터 자기 삶을 온통 레아의 삶에 맞춘다. 그러나 딸 레아가 ‘마드모아젤 바흐’라 불리며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성공가도를 달릴수록 아버지는 점점 더 딸에게서 소외된다. 그러다 한순간 딸의 정신이 무너지자, 아버지는 그런 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딸에게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과르네리 델 제수를 쥐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인생 모두를 건 아버지의 미친 듯한 도박 한 판이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 두 사람을 치명적인 비극으로 몰아가는 트리거가 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재능 있는 젊은 예술가의 천재성과 과도한 완벽주의가 불러낸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작가가 레아와 그 아버지의 삶을 통해 정작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것은 자신의 일과 삶에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힘든 현대를 사는 평범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레아의 음악을 향한 소모적인 열정과 그런 딸을 향한 아버지 마틴 반 블리에트의 과도한 집착은, 실상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에서 충만한 내적 가치를 끌어내기 힘든 현대인들이 빠져 들어가기 쉬운 함정이다. 그 함정은 일상적 관계를 유연하고 스스럼없이 맺지 못하는 성격적 결함에서 파생된 것일 수도 있고, 잠복해 있던 우리 내면의 열정이 어느 순간 인생 전체를 담보로 나머지 세상과 게임을 벌어보려는 위험한 “영혼의 리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어두운 영혼의 리듬을 포기하지 못하는 열정가들은 그 열정의 강도만큼이나 사람이, 세상이, 영원히 낯설다고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그가 느낀 것은 사람들 사이에 궁극적으로 남아 있는, 서로 넘을 수 없는 낯설음이었다. 애초부터 그걸 추측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건 그의 내면에서 퇴적된 경험, 다른 모든 느낌들의 침전물이었다.” (267쪽)

자기 삶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고 느끼는
두 50대 남자의 가슴 뭉클한 교감

레아와 그 아버지 마틴 반 블리에트의 비극적 삶은, 프로방스에서 우연히 마틴 반 블리에트를 만나게 된 전직 외과의사 아드리안 헤르초크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이전까지 베테랑 외과의사였던 50대의 아드리안 헤르초크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자동차 앞으로 한 소년이 뛰어들면서 평생 동안 구축해온 자신감이 와해되는 경험을 한다. 그 일을 계기로 의사직을 관두고 그간 소원하게 지냈던 딸을 만나러 프랑스 아비뇽으로 갔다가 스위스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스위스인이자 동년배인 마틴 반 블리에트를 만나 그의 비극적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다.
열정의 삶보단 절제의 삶을 살아온 아드리안 헤르초크는, 자신과 전혀 다른 성정과 삶의 배경을 가진 마틴 반 블리에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타인과의 교감을 경험한다. 내면의 열정과 충동을 유보한 채 안정적 삶의 구축에 매달려온 아드리안 헤르초크는, 겉으로는 유능하고 침착한 학자였으나 내면에선 늘 도박꾼 기질로 가득했던 마틴 반 블리에트가 결국 자기 삶에 불러들인 불운에 오히려 매혹된다. 그런 가운데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던 자기 인생의 결정적 고비를 회상한다.
아드리안 헤르초크와 마틴 반 블리에트.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던 두 남자는, 더 이상 자기 삶을 어찌할 수 없다고 느끼는 50대 후반의 어느 날 길동무로 만나 단 사흘 만에 일생 동안 그렇게나 열망했던 타인과의 동질감을 뭉클하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시선은 그를 지나쳐 우리 두 사람을 비추고 있는 벽거울로 향했다. 그 속엔 가까운 것과 먼 것에 관한 한, 친밀함과 낯설음에 관한 한 완전히 문외한인 두 사람이 들어 있었다.” (93~94쪽)


■ 책 속으로

자신감, 그것은 왜 그토록 변덕스러운가? 왜 그것은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실들과 맞서는가? 평생 동안 우리는 그것을 구축하려고, 그것을 확보하고 고정시키려고 애써왔으며, 그것을 값진 자산이자 행복을 위한 거부할 수 없는 요소로 알아왔다. 그때 갑자기 음험하게 소리도 없이 바닥의 뚜껑이 열리고, 우리는 그 끝 모를 곳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있었던 모든 사실들이 신기루로 변해버린다. (53쪽)

“커다란 불안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단지 무대 뒤로 사라졌다가 나중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걸까요? 그 위력이 가시지 않은 채로요. 당신에게도 그런가요? 그런데 왜 기쁨, 희망, 행운 같은 것은 다르죠? 왜 어둠이 빛보다 훨씬 더 위력이 센 걸까요? 빌어먹을, 그 이유를 나한테 설명해줄 수 있어요?” (165쪽)

“나중에 내가 딸을 더 알게 되었을 때 이따금 생각했어요. 그녀는 음으로 상상 속의 성당을 짓듯이 연주했다고. 자기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가 오면, 그 안에 들어가 숨 쉴 수 있도록. 특히 크레모나에서 그 생각을 했어요. 그곳 대성당이 마치 레아가 상상 속에서 지은 성당인 양 그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 나는 그렇게 가끔 내 내면의 은밀하게 닫힌 방 안에서, 모든 관습과 이성을 벗어 던진 레아의 고집을 부러워했습니다.” (168쪽)

“제삼자를 위한 사랑, 갇혀 있는 고독감에서 나온 사랑이었어요. 또한 이별의 고통에 맞서는 보루였어요. 사랑, 사실상 달리 표현할 수는 없네요. 나로서는 구 년 동안이나 주저하며 간직해왔던 사랑이었습니다. 그 주저함의 그늘 속에서 감정은 서서히 퇴색해갔지만요. 마리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신과 레아를 이어주는 끈에 불과했을까요? 레아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증해주는 존재였을까요?” (186~187쪽)

“내심 레아가 그런 내 신호들을 해석하리라 기대했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정작 그녀가 깨닫지 못한다면 나의 그 모든 가장이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내 고통의 주인이 되려 했던 위장들이요. 내가 속수무책인 채로 스스로 만들어낸 내 모습을 파괴하며―왜냐하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정신적 고통이, 우연히 다가오는 고통보다는 견디기 쉬우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191쪽)

나는 나중에 도끼로 그 야등을 깨버렸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지하실 상자를 뒤져 기어코 찾아낸 그것을 통나무 위에 놓고 도끼로 내리쳤다. 둔탁하게 탁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수천 개의 파편들로 갈라졌다. 처형이었다. 어머니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나 자신의 맹목적인 신뢰에 대한 처형이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에 걸었던 내 신뢰에 대한 처형이었다. (199쪽)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는 낯선 시선을, 폭로하는 듯한 타인의 시선을 원치 않았다. 그는 그런 시선을 파괴적인 것으로, 레아와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236~237쪽)

“나중에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내 정신도 일그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주 이상하더군요. 지독한 공포에 사로잡힐 줄 알았거든요. 미치고 말 거라는 불안감에요. 그런데 괜찮았어요. 행복감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만족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 사람은 자발적으로, 복종하면서, 또 어딘지 만족한 채, 심연이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때도 있어요.” (245쪽)

나는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그래, 마틴. 자네는 그렇게 느끼고 행동했어야만 했네. 바로 그렇게. 그게 자네 영혼의 리듬이었으니까. 물론 세상에는 다른 바이올린도 많고, 그중 어떤 것이 레아의 손안에 들어갔더라도 고상하게 울렸을 거네. 다른 악기였다면 자네를 그런 대담무쌍하고 어처구니없는 도박판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거네. 하지만 자네는 그럴 수 없었네. 꼭 과르네리 델 제수이어야만 했네. (250쪽)

“마치 박쥐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고, 그냥 서로 듣고 느끼기만 했어요.” 내 생각에 그가 즐긴 것은 그 절대적이고도 유령처럼 섬뜩한 낯설음이었다. 분명 기분 좋은 것을 느낄 때와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칠흑 같고 절망적인 추측이 진실과 일치한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그 위로 달려들어 그걸 꽉 움켜쥐는 감정과 같은 것이었다..” (267쪽)



■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파스칼 메르시어(Pascal Mercier)
본명은 페터 비에리(Peter Bieri). 1944년 스위스의 베른에서 출생한 작가이자 철학자. 베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와 영국 런던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맥타가트의 시간철학을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3년부터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소설을 집필할 때만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그는 『페를만의 침묵(1995)』, 『피아노 조율사(1998)』를 출간했으며 2004년에 출간된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독일을 비롯 세계 15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20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6년에 독일의 ‘마리 루이제 카슈니츠 상’을, 2007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최고 외국어 소설에게 주는 ‘프레미오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두행숙
서강대 독문과를 졸업한 후 독일 뒤셀도르프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와 명지전문대에서 독일문학과 철학을 강의하며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인생을 보는 지혜』, 『헤세, 내 영혼의 작은 새』, 『시간이란 무엇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꿈꾸는 책들의 도시』, 『하얀 마사이』, 『디지털 보헤미안』, 『타이타닉의 침몰』, 『템포 바이러스』, 『거대한 도박』, 『윌리엄 왕자와 막시밀리안 민스키 그리고 나』 등이 있다.


■ <레아>에 쏟아진 해외 언론, 서점들의 찬사

“감정의 폭력, 그리고 인간들 사이의 낯설음을 다룬 인상 깊은 소설.” -

“완벽한 구성, 긴장 넘치고 재밌으며, 기억에 남을 만큼 신비스럽다.” - <책문화>

“사람들은 좋은 소설은 단숨에 삼킨다. 소설 <레아>는 하룻밤이면 다 읽을 수 있다.” - <브리기테>

“온갖 감정들이 수반된 예술가의 생애를 다룬 후기 낭만주의적 소설. 천재성과 광기, 사랑과 배신, 광포함 그리고 자기파괴욕이 포괄적으로 멋지게 묘사되고 있다.” -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이 책 속에는 멋진 영상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냥 영화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장들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울고 싶을 정도다.” - <책들>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비논리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줄거리 자체는 결코 복잡하거나 비논리적이지 않으며 전혀 감상적이지도 않다. 등장인물들이 지닌 섬뜩할 정도로 깊은 감정을, 화자는 독자에게 마치 솜털처럼 가벼운 현수교처럼 전달한다.” - <신 취리히 신문>

“얼마나 훌륭한 책인가. 매우 우울하고, 나직하면서도 힘차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금년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다!” - 알렌 시 <뷔허 얀> 서점

“파스칼 메르시어는 언어로 쌓아올린 자신의 대성당으로 진혼곡을 만들어내고 있다.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레아의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 함부르크 <바일란트 서점>

“베토벤 교향곡처럼 너무나도 탁월하다. 낭랑한 울림을 지닌 언어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무조건 읽어야 할 책.” - 베를린 <문화 백화점>

“<리스본 행 야간열차> 이후로 작가에 대한 나의 기대는 비교적 높았는데 이 책은 기대 이상이다. <레아>는 매우 감동적이고 언어상 완벽하며, 게다가 아주 긴장감이 넘쳐서 한 번에 다 읽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탁월하다. - 하노버 <데시우스> 서점

“격정적인가, 그렇다! 다정다감한가, 아니다!” - <장크트 아우구스틴> 서점

“타인에게 도달할 수 없는 낯섦, 지나치게 고양된 자기의지가 다다르는 막다른 길, 명예욕이 지닌 파괴적인 힘에 대해서 쓴 전율적인 책.” - 뒤셀도르프 <드로스테> 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