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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향신문] [이진송의 아니 근데] 뒤바꿔본 성역할… 일상 속 가사노동의 불평등을 다시 생각하다
글쓴이 운영자 작성일 2021.09.30 조회수 12663

| 영화 ‘박강아름 결혼하다’에서 주목받는 결혼 실험

남편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난 ‘82년생 박강아름’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결혼 제도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요약되는 <박강아름 결혼하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을 수상하고 코펜하겐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남편을 데리고 프랑스로 떠난 ‘82년생 박강아름’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결혼 제도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요약되는 <박강아름 결혼하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을 수상하고 코펜하겐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영화사 진진 제공

추석연휴의 시작이다. 명절을 맞이하는 감정은 개인차와 세대차가 아주 크다. 여전히 사회의 ‘큰’ 틀에서는 명절을 전통적 색감과 명암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따뜻한, 풍성한, 반가운,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행복한 등등. 공중파를 틀면 나오는 장면 말이다.

하지만 디테일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호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져나온다. 명절 노동, 고부 갈등, 각종 감정싸움, 대학·취업·결혼 잔소리 3종 세트 등등. 가족이 여럿 모이면 다양한 상이 차려진다. 밥상, 다과상, 술상, 그중 최고는 밉상이라. 밉상 질량보존법칙에 따라, 100개의 가정에는 (최소) 100명의 밉상이 있다. 양상도 다양하다. 밥이 다 차려질 때까지 TV 앞에서 손 하나 까딱 않거나, 숟가락을 놓기 무섭게 누군가에게 커피와 과일을 주문하는 밉상 집에 언제 가냐? 아, 우리 집에서 살지 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은 더 이상 덕담이나 소원이 아니다. 팀 버튼이 한국인이었다면 <크리스마스의 악몽>보다 <추석의 악몽>을 먼저 기획했다는 데 올해 먹을 꿀송편을 건다. 죽어라 빚던 과거를 청산하고, 3000원 주고 사올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 명절 문화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우리는 되도록 덜 만나야 한다. 이 기간에 일하지 않는 이들은 이동과 만남보다는 ‘집콕’으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동안 또 부지런히 먹고 마시고 싸고 자면서 집을 더럽힐 것이다. 직접 치우거나, 누군가가 치워주는 걸 당연히 여기거나,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가는 일상. 연휴 동안 보면 좋을 추석 특선(?) 영화 한 편 들고 왔습니다~! 전통적 성역할이 뒤바뀌어 남편이 밥하고, 아내가 일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박강아름 감독의 <박강아름 결혼하다>. 최근 개봉했다.

영화의 주인공 박강아름과 남편 성만은 프랑스에서 결혼 생활을 한다. 미술을 공부하고 싶은 박강아름이 프러포즈할 때부터 함께 프랑스에 가자고 설득했다. 불어를 할 줄 아는 박강아름이 유학과 경제 활동, 행정 업무를 맡는다. 한국에서 요리하고 글 쓰던 성만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전업주부가 되어 박강아름을 ‘내조’한다. 성별을 빼고 보면, 구도 자체는 매우 익숙하다. ‘큰일을 하려고’ 공부하거나 일하는 미래의 ○○○, 그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는 배우자 혹은 애인. 하지만 성별을 빼고 볼 수 없다. 압도적으로, 뒷바라지는 여성의 몫이다. ‘헌신하다 헌신짝 된다’라는 말이 경고하는 대상은 언제나 여성이며 조강지처는 있어도 조강지부는 없다. 영화에는 박강아름과 성만을 본 지인이 “아, 남편도 (유학을 따라) 와 줄 수 있구나. 그런 건 생각 못했다”라는 발언이 나온다. 아내의 유학에 ‘따라와 준’ 남편. 어떤 익숙함은 성별만 바꿔도 덜컹거리기 시작한다.

‘가부장적 여자·내조하는 남자’ 뒤집은 결혼 생활서 모순 상황 경험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경제·가사’ 문제 용감·솔직하게 뒤틀어
여자·엄마라서가 아닌 성별 구별 없이 누구나 아내 노동 할 수 있어
결혼 여부 떠나 ‘역할’에 의문 가졌다면 이번 추석에 보면 ‘흥미진진’

영화 초반,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박강아름의 말에 성만은 대답한다. “나는 이 집의 식모예요. 밥 차려야 되는데.” 이름을 묻자 되묻는다. “식모가 이름이 어디 있어요?” 낯선 남자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경제권이 없는 성만은 그냥 토마토 대신 비싼 체리토마토를 샀다고 추궁당하고, 커피도 허락을 받고 마신다. “자기랑 싸운 다음에 빡쳐가지고, 내가. 씨, 흥청망청 나도 돈 쓸 거야. 그러고 여기 와서 흥청망청 쓴 게 아이스 커피 3유로짜리 마신 거.” 부부에게는 아기도 있다. 아무리 역할이 역전되어도 아기는 대신 낳아줄 수 없으니, 사회가 알려주지 않는 임신부의 50가지 고통을 뚫고 박강아름은 출산했다. 박강아름은 ‘바깥일’을 하느라 분주하니 육아는 성만의 몫이다. 매일 도시락 두 개를 싸며 육아하던 성만은 ‘주부 우울증’에 걸린다. 사회적 고립과 경력단절, 독박육아, 독박가사라는 강렬한 볼링공에 볼링핀처럼 쓰러지는 성만이, 집에서 노는 여자로 취급받다 미쳐가는 ‘82년생 김지영’과 겹친다.

그런 성만을 위해 박강아름은 <카모메 식당>에서 착안, 일주일에 한 팀만 예약을 받아 음식을 판매하는 ‘외길 식당’을 연다. 처음에는 이 ‘외길 식당’이 영화의 아이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촬영분이 쌓이면서 박강아름은 자신이 전형적인 ‘가부장’처럼 굴고 있음을 발견한다. 용감하고 솔직한 영화는 방향을 튼다. 이런 역전은 지금까지 우리가 무엇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를 해석할 프리즘은 여러 개다. 이 글에서는 성역할과 젠더화된 가사노동을 좀 더 집중해서 다루고자 한다. 이성애 결혼 위주로 분석한다는 뜻이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보편적인 관습과 충돌할 때 불쑥 두드러진다. 집에서 일하는 박강아름이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미동조차 없이 자기 일을 하거나, 아이가 아플 때조차 잠깐 ‘돕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그렇다. 성만이 김치를 담그면서 아기에게 혼잣말처럼 레시피를 설명하거나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얼굴이 그렇다. 부엌 상태를 지적받자 성만이 ‘그럼 네가 24시간 해보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박강아름이 “나도 도와주잖아”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푸스스 웃어버렸다.

애너벨 크랩은 저서 <아내 가뭄>(황금진 역, 정희진 해제, 동양북스, 2016)에서 ‘아내 노동’을 이렇게 지적한다. “전통적으로 아내란 집 안 여기저기 쌓여가는 무급 노동을 더 많이 하려고 유급 노동을 그만둔 사람이다. (…) ‘아내’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아내가 남자든 여자든 중요한 것은 아내는 끝내주게 좋은 직업적 자산이라는 점이다.”(30쪽), “나는 아내가 있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것도 아주 간절히. (…) 그런데 왜 현실의 나는 집요하게 내 코에 시리얼을 집어넣는 애한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글을 써야 할까? 에잇, 나도 아내가 필요하다. (…) 아내가 있다는 것은 야근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의미다.”(30쪽)

그렇다. 박강아름은 ‘아내’를 가졌다! 그렇기에 가부장이 될 수 있다. 여자인데도? 여자인데도. 차려주는 사람이 있기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밥은?” 하고 묻고, 돌보는 사람이 있기에 아이가 아프든 말든 자기 일에만 몰두할 수 있다. 성별이 아니라, 위치와 수행성이 그러한 관계와 역할을 만든다.

누구나 아내 노동을 할 수 있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엄마라서가 아니라. 특정 성별이 아내로서 ‘적절하게’ 기능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애너벨 크랩 같은 저명한 학자의 분석이 아니라도, 아내라는 직장에 남자 아내를 채용하기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생기긴 했지만, 남자의 육아휴직은 여전히 여자의 육아휴직보다 쓰기 어려운 무언가이다. 그에게 ‘아내 시간제’직을 주는 것은 그의 성공을 가로막는 잘못된 선택처럼 여겨진다. “이 직장에는 성공에 이르는 데 참고할 만한 이정표, 즉 뚜렷한 방향 안내와 목표, 칭찬이나 보너스 혹은 둘 다 받게 해줄 만한 일의 업적 같은 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 일을 통해 성과를 거둔다고 해도 한순간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고 그나마 얼마 못 가서 잊히고”(46쪽) 말기 때문이다. 일상적으로 축적되는 경험과 관습 또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 집에서는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싱크대까지 꼭 갖다 놓아야 한다.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동생이 그렇게 하자 다들 그 애를 ‘착하다’라고 칭찬했다. 당연히 할 일을 했는데 착하다고? 그건 여자애들에게 초등학생 때부터 어른 먹을 과일을 깎으라 시키면서도 해주지 않은 칭찬이었다. 그때 무슨 말을 듣긴 들었다. “시집가도 되겠네.” 아 장난하나 진짜~!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정희진은 이렇게 썼다. “‘아내 가뭄’은 모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반대로 어느 누구도 ‘아내를 가질’ 특권은 없다는 뜻이다.”(13쪽)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손님이 모이지 않아도 최소 단위의 가사노동은 발생한다. 하다못해 배달을 시켜도 뒷정리와 분리배출, 최소한의 설거지거리가 생긴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누군가 그것을 책임지기에 유지된다.

박강아름_결혼하다아내_가뭄가사노동



※ 출처 : 경향신문(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109171518005#csidxaaa6fe4e2111d56a2d12640)cabec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