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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스와 현장] 저출산 해결의 첫걸음
글쓴이 운영자 작성일 2017.01.04 조회수 92708

전도연 설경구 주연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년)라는 영화가 있다. 미혼 남녀의 사랑 이야기지만 언제부턴가 일하는 여성에게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퇴근 때마다 '또 출근하러 간다'고 읊조리는 그들에게 아내란 성별 불문하고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누군가다.

최근 기자에게도 '아내'가 생겼다. 출근과 두 아이 학교, 어린이집 보낼 준비로 동동거리는 엄마를 대신해 며칠 휴가를 낸 아빠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등교·등원시켰다. 아침마다 옷을 입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걷기 싫다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안고 갈 때까지 버티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면 출근도 전에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 중 가장 힘든 아침 일과를 도맡아 주는 사람이 있으니 '아, 이래서 아내가 좋구나'는 말이 나왔다.

맞벌이가 많아지면서 집안일 분담은 필수다. 하지만 앎과 행위의 괴리는 상당하다.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일·가정양립 지표'를 보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높아지는 추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부부 10쌍 중 2쌍(17.8%)만 공평 분담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이마저도 남편들의 답변이라 아내 입장에서는 수치가 낮아질 수 있다).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3.5%로 2년 전(47.5%)보다 6.0%포인트 증가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를 부인 주도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43.8%였다.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남편의 가사 시간은 고작 3분 늘었고(37분→40분), 아내는 6분 줄어드는 데(200분→194분) 그쳐, 아내가 여전히 5배나 길었다(통계에 따라 열 배 차이 나는 자료도 있다). 아이가 어린 30대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은 4시간2분이나 된다고 하니, 회삿일과 잠 잘 때를 빼고는 오롯이 집안일에 매여 있는 셈이다.

부부의 불평등한 가사노동 현실은 결혼 후 출산을 미루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2015년 신혼부부 통계에 따르면 초혼 신혼부부 가운데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부부는 35.5%다. 눈에 띄는 부분은 출산하지 않은 부부 중 맞벌이 비중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외벌이 부부의 70.1%는 자녀가 있지만, 맞벌이 부부는 57.9%뿐이다.

호주의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의 책 '아내 가뭄'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지만, 여성 CEO 여성 정치인 여성 리더가 아직도 드문 이유가 여성이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거나 여성 인재풀이 부족해서, 혹은 남성들이 남성만을 승진시키기 때문이란 분석에 저자는 콧방귀를 뀐다.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고위직 진출을 도와줄 사람, 즉 '아내'가 집안에 부족한 거죠." 이 한마디에 저출산 문제, 젊은 층 감소와 인구 절벽 위기, 노년층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부담 확대 등 수많은 문제의 해결책이 담겨 있다.그래도 변화의 물결은 있다. 롯데그룹이 대기업 최초로 내년 1월 1일부터 최소 1개월 이상 아빠 육아휴직을 의무화한다. 한 달 급여도 지급한다. 기업문화가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곳이기에 더 신선하다.

이틀 후면 정유년 새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부부가 함께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양립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사회적 통념이 뒷받침되는 그날에 한 발 더 다가서기를 바란다.



사회1부 차장 iej09@kookje.co.kr




* 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61230.2202919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