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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말을 걸다 (밥상에서 건져 올린 맛있는 인생찬가)
음식이 말을 걸다 (밥상에서 건져 올린 맛있는 인생찬가)

저자: 권순이 지음, 김승범 사진, 이화소 일러스트 l 출판사: 상상공방 l 판형: 신국변형 l 발행일: 2008.03.12 l ISBN: 978-89-8300-586-1 l 페이지: 280  

 

정가: 11,000원

음식 한 그릇에 깨달음 한 스푼
한 끼 때우는 것으로 만족하던 우리 사회에도 언젠가부터 맛집 순례 취미가 생겨나고 요리사, 파티셰, 푸드스타일리스트 등 음식과 관련한 직업이 주목받게 되었다. 어떤 음식과 음료를 좋아하느냐가 한 사람의 취향과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잣대가 된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연, 일상의 하루하루에서 우리는 얼마나 음식과 교감하고 있을까?
아침은 거르거나 공복감만 겨우 달래고, 점심과 저녁도 간편한 즉석음식이나 외식으로 해결하기 십상이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다는 것,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벤트가 된 시대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음식 문화가 만개한 듯 보여도 실상은 여전히 한 끼 때우는 데 급급하다. 한 가정의 주방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리라는 노동은 점점 소외되고 있으며, 식탁의 풍경도 건조하다.
<음식이 말을 걸다>의 저자 권순이는, 음식에 대한 이런 이중적인 태도가 반성 없이 만연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한문교사 23년차이다. 이른 새벽 쌀 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녀의 조리 노동은, 그러나 전혀 소외되지 않았다. 누가 알아주고 칭찬해 주어서가 아니다. 그녀 스스로 조리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 의미 부여는 음식을 구성하는 식재료의 본질을 알아가는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식재료를 만지고 맡으면서, 또 거기 열을 가하면 나타나는 반응을 지켜보면서, 음식에게 말을 건다. 그러니 음식도 그에 대답한다.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은 두부가, 무가, 자신이 다른 재료와 만나면 얼마나 가치를 폭발시키는지를 말해준다. 감자도 대답한다. 생으로 먹으면 내가 좀 알싸하지만 익히면 그렇게나 부드러운 먹거리가 된다고. 이런 식재료와의 대화를 통해 저자는 식재료의 본질이 곧 사람과 세상살이에 대한 본질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음식 한 그릇에 추억 하나
또 하나. 어떤 음식이든 거기에는 잊고 지냈던 추억이 담겨 있다. <음식이 말을 걸다>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음식 한 그릇에 추억 하나, 아니 식재료 하나하나에 추억 하나가 담겨 있으니, 음식 한 그릇에는 인간의 한 시절이 담겨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 생각 없이 먹었던 한 그릇의 음식을 주부가 되어 직접 조리하면서, 한때는 거부했던 식재료를 조리에 사용하면서, 기억의 저장고에서 잊혀져 가던 사람과 사건들을 환기한다. 여기에 뒤늦게 깨달은 식재료의 본성이 곧 인간과 세상살이에 대한 알레고리임을 알게 되니, 그녀의 조리 노동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한 자기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그 자기성장의 결론은 이렇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게 돌아갈 것이고 삶의 골목골목에서 부딪치는 인간들과 우리는 여전히 충돌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해도, 이해하려고 온 정성을 쏟아 부어도, 결국엔 행복충전인 생은 없을 것이고 완전한 커뮤니케이션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린다. “음식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꽃 한 송이.” 그 사랑이 이해받지 못할지언정, 또한 인간 감정의 표현 양식이 어차피 왜곡되어 있으니, 그럴 바엔 음식 한 그릇을 바치자. 오해와 곡해, 지지와 무관심을 오고가는 인생살이에서 서투르고 과장된 위로보단 음식 한 그릇을 바치자.
주부가 새벽에 홀로 일어나 밥을 짓는 행위가 일종의 묵언 노동이듯, 그 밥을 받아먹는 사람도 묵언으로 감사를 표한다. 그 감사가 밥을 지어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도 좋다. 그 밥 한 그릇이, 세상살이에 치여 어느덧 자아를 상실해버린 사람의 자존감만 복원시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아들딸이었을 때의 밥상을 생각해내며,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가 충만해지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것이 다시 오늘을 사는 에너지가 되어 스스로 일어나면 충분한 것이다. 잃어버린 정체성을 다시 기억해내면서 우리는 힘을 얻고 다시 서로 다른 사람과 충돌하고 타협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음식이 전해 주는 삶의 에너지
음식이라는 행위는 어찌 보면 사실 대단히 반복적인 행위다. 재료를 고르고 씻고 다듬고 조리하고 그릇에 담고 차려내고 빈 그릇을 설거지하고 다시 그 그릇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행위. 인생도 대단히 지루한 규칙의 반복 행위다. 하지만 그 반복적인 일상의 마디마디에 꽃을 달기 시작하면 인간이 실망스럽고 세상살이가 절망의 연속일지라도, 우리는 결국 생을 긍정하게 된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이렇게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너를 칭찬해주고 싶어. 결국 나 자신에게 꽃을 달아주며 인생에 대한 찬가를 부른다. 희노애오욕으로 점철된 생을 긍정하지는 못할지언정 그것을 삶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나를 보면서 슬프고 기쁜, 그래서 풍성해지는 인생 찬가를 부른다.

에세이와 요리법이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구성
이 책은 한 장에 하나의 음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선 그 음식을 하게 된 동기가 서두에 소개되고 본격적으로 음식을 하는 과정과, 음식을 매개로 지은이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이 전개된다.
독자로서는 ‘이야기가 자꾸만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저자의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의 옛 기억들을 떠올리며 부지중에 가슴속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요리를 직접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놓는 형식이기 때문에, 기존의 딱딱한 요리책에서보다 더욱 생생하고 편안하게 요리법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도 지녔다. 아울러 각 장 마지막에, 완성된 음식 사진과 본문에서 소개된 음식 레시피를 간단명료하게 첨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추천사 

권여선(소설가)
무언가 또는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는 건 행복한 체험이다. 하물며 그 무엇이 따끈한 음식일 때, 그 누군가가 그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일 때의 희열을 어떻게 표현할까. 이 책은 그 잔잔한 희열을 아는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오는 말이다. 오래 전엔 그렇지 않았지만 요즘엔 여럿이 함께 떠들썩하게 음식 만드는 일이 드물어졌다. 조리는 다소 고독한 작업이 되었다. 이 책의 그녀 또한 조금은 고독해 보인다. 그녀의 그 고독이 싱싱하고 기품 있는 사색을 낳았다. 재료를 맨손으로 빚고 무치고 버무리기를 좋아한다는 그녀의 예쁘장한 손앞에 봄날 아기 새처럼 입 벌리고 싶다.

박재동(만화가)
아니, 그토록 재미없어 하던 요리 이야기에 내가 이렇게 빠져 들다니! 알콩달콩 이야기에 빠져 들다가 애탕국이, 마파두부가 먹고 싶어진다. 마침내는 돌나물을 직접 무쳐 보고 싶다. 그러는 사이 미끄러져 들어간 곳은 결국 아릿한 저자의 삶. 사랑이라는 재료를 바지런함으로 장만하고 추억으로 헹궈낸 뒤 가슴 싸하게 끓인다. 짠하고, 알싸한 맛 뒤엔 맛소금 같은 깨달음 한 술. 그리고 하늘 같은 하얀 밥 그릇. 아아, 나는 그이의 이 정갈하고 다정한 음식을 먹고 뼛속까지 영양분이 스며든 채 하늘을 보고 쌀밥처럼 웃었다.




 본문 발췌 

생강을 날로 먹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다가 우연히 먹어 보니 쌉쌀하며 매캐한 맛, 거기에 살짝 숨어 있는 달큰하며 톡 쏘는 맛이 참 매력 있었습니다. 꼭 나보다 성숙한 언니나 친구가 건네주는 충고 같은 맛이었습니다. 마음이 아릿하고 쌉쌀해지지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에 조금 달콤하기도 한, 사랑하는 이들의 염려와 충고 같은 맛이었습니다.

―「백김치: 시간이라는 마술이 우려내는 맛」166쪽에서

수북이 쌓인 껍질과 그 껍질 안에 숨어 있던 탱글하니 부드러운 새우 살을 보며 우리 마음 같다 싶습니다. 내 마음 안의 연한 것, 보드라운 것을 숨기기 위해 위장의 껍질을 썼던 젊은 시간들….
―「새우튀김: 뻐센 위장의 가면을 벗고 마음의 속살로 만나기」96쪽에서

엄마의 고추장은 수용의 상징이었지만, 그 맛은 사실 세련된 거절의 맛과 닮았습니다. 알싸하면서도 상큼합니다. 세련된 거절, 사납지 않은 거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좋을 때가있습니다. 그런 때 거절조차 못하면 차라리 내가 한 숟가락 고추장이면 좋겠습니다.
―「돌나물무침: 상큼하고 세련된 거절의 맛」258쪽에서

식재료가 품고 있는 속성들을 발견하다 보면 우리 곁의 사람, 세상과 그럴 수 없이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재료를 다루는 방법도 우리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 닮아 있습니다. 음식을 하는 행위는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길입니다.
―「에필로그: 하늘과 땅, 우주의 기운을 품은 밥」274쪽에서



 저자 소개 

권순이
인류 최초의 행성탐사선 ‘마르스’가 발사된 1960년, 서울 성북동에서 육남매의 셋째 딸로 태어나다. 개성 강한 형제들 사이에서 별 존재감 없이 자라다 성균관대 한문교육학과를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친 지 23년째. 과학교사인 남편과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으면서 그 전까지는 관심 밖이었던 요리에 입문하다. 새끼 입에 들어갈 것은 서툴러도 내 손으로 만들리라는 소박한 결심이 열어 준 세계는, 젊은 시절 세상을 떠난 엄마의 존재를 그녀 속에서 부활시키다. 뒤에서 누가 불러 주는 듯 어린 시절 어깨 너머로 설핏 보았던 엄마의 요리법이 그녀 손에서 복원되다. 따라서 그녀의 음식은, 그녀의 형제들을 추억의 별로 쏘아 올리는 탐사선이다. 엄마의 음식을 재현하자 그녀 속에서 엄마도 되살아나 고단한 삶을 쓰다듬어 주다. 때론 문드러지고 때론 꺾일지언정 곁의 사람과 함께하는 자세가 살아 내는 가치임을 깨닫다. 음식이 그 어떤 말보다 가장 강력한 삶의 위로라는 것, 조건 없이 사랑 받고 존중 받던 한때로 순식간에 되돌려 놓는 마술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그 마술의 원천인 식재료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다. 음식이 꽃피우는 환희를 식구와, 제자와, 벗과 나누고 싶어 동트기 전부터 혼자 일어나 온갖 식재료를 꺼내 놓고 맡고, 듣고, 만진다. ‘음식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꽃 한 송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두 아들인 첫째 (사랑)덩이와 둘째 (행복)뭉치는 올해 군인이 되고 고3이 된다.